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로마치 시대 (문단 편집) === [[아시카가 요시미츠|요시미츠]] 치세 === 무로마치 막부의 [[리즈 시절]]은 대략 3대 쇼군인 [[아시카가 요시미츠]](足利義満)의 치세였다. 이 쇼군 치세에 남북조가 통일되었고, '무로마치 막부'의 어원이 되는 [[교토]]의 무로마치 어소도 그의 치세에 지어졌으며, 그 유명한 [[금각사]](킨가쿠지)도 이때에 건설되었다. 금각사는 화려함에 걸맞게 무로마치 막부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건물이다. 또한, 일본의 전통극 중 하나인 [[노가쿠]]도 요시미츠 대에 제아미에 의해 그 기틀이 마련되었다. 어떤 의미에서 이 막부의 실질적인 창업자는 [[아시카가 요시미츠]]라고 봐도 좋은 셈. 그만큼 정치 수완도 상당히 뛰어난 걸물이었다. 그러나 요시미츠는 [[일본사]]에서 5세기([[왜5왕]]시대) 이후 유일하게 [[중국]]으로부터 책봉을 받은 인물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아들 [[아시카가 요시츠구]]를 [[천황]]의 양자 겸 [[황태자]]로 들이는 식으로 자신의 [[가문]]을 [[천황]]으로 올려 [[찬탈]]하려고 했다. 그의 사후 천황 측의 반발과 집안 내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.[* 요시미츠의 죽음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병사였지만 조정에서 손을 쓴 것이라는 [[일본사의 음모론]]도 있다. 뒷날 [[혼노지의 변]]에서도 조정이 배후였다는 설과 비슷한 케이스다.] 그랬기 때문에 정작 [[메이지 유신]] 이후 천황제가 확립된 근대 일본 사회에서는 그 평가가 굉장히 박했다.[* [[메이지 유신]] 이후 신정부 및 유신 주도 세력들은 심지어 [[메이지 덴노]]가 북조 계통임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남조를 진짜 정통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. 그래서 남조 계통 [[종가]]들이 이후 일본 [[귀족]]([[화족]])에 편입되어 고위 귀족 가문이 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